컬럼리스트]]> <![CDATA[케이피플 kpeople > 컬럼리스트]]> 컬럼리스트]]> 컬럼리스트 http://kpeople.co.kr 제공, All rights reserved.]]> Sun, 22 Apr 2018 13:59:30 Sun, 22 Apr 2018 13:59:30 <![CDATA[ ■■■■■역대급 자본의 정싸이트에서 총판사장님 모십니다■■■■■ ]]>  
 
 
* 안녕하십니까 인사부터 드리겠습니다.
 
 
 
* 이번기회에 저희 정사이트 공원에서 투명하고 안전하게 사장님들은 귀중하게 모셔봅니다 .
 
 
 
*저희는 스포츠 라이브배팅 사이트입니다. (축구,야구,농구 등 모든 종목 라이브배팅 가능합니다.)
 
 
* 단 한가지 정사이트 이며 , 먹총판 사장님들께서는 알아서 뒤로 물러나주시면은 감사드리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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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번째 ♠
 
 
 
* 불편한 부분 추가 부분 수정 부분이 있다 생각되시면은
 
 
 
 
 
   언제든지 말씀해주시면은 반영하여 최대한 불편 없이 진행되도록
 
 
 
   맞춰드릴수있는 부분 한해서 맞춰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두번째 ♠
 
 
 
* 커미션 부분입니다 . 커미션 부분은 죽장 / 롤링으로 진행합니다 
 
 
 
* 루징(죽장) 초기 35% ~ 최대 45% 주정산으로 귀중하게 모십니다
 
 
 
 * 롤링은 스포츠,실시간 모두 1% ~ 3%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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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산금 받는게 두려우십니까? 저희는 모두 깔끔하게 세탁하여 안전한 계좌에서 정산금 나갑니다.
 
 
 
* 정산부분은 주정산 입니다. (주 정산이 원칙이나 상담 후 조율)
 
 
 
* 그 외 정산 부분에서 문의가 있으시면은 대화하실때 말씀주시면은 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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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원 부분 선지원 - 초기부터 와서 다짜고짜 보증금 타령 사장님들 뒤로 가주십시요.
 
 
 
* 사장님들께서 보여주신 만큼 저희도 지원 요구하시는거에 맞춰서 나갑니다.
 
 
 
 
 
 
♠ 네번째 ♠ 
 
 
 
* 철새 총판 사장님들은 문의 안주셔도 되십니다 .
 
 
 
* 총판 사장님들 소수만 모집합니다 .
 
 
 
* 회원 100명 깡통보단 실벳 1명을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
 
 
 
* 본사에서 직접 사장님들 구인중이며 저희는 먹튀 총판 모시지 않습니다.
 
 
 
* 부본사 실력있으신분만 부본사 가능하십니다 . 커미션 또한 상담후 결정 가능하십니다.
 
 
 
★ 단 사장님들께서 의지. 노력 보여주시면은 저희가 같이 안고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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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 30 Mar 2018 11:0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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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 22 Mar 2018 20:2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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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 22 Mar 2018 20:28:48
<![CDATA[정사이트 GROWING 본사에서 총판/부본사모집합니다 최대커미션으로모집中]]>  
본사직영으로 더 신뢰있고 믿음가리라 생각됩니다. 
 
모집글 보시고 연락했는데 앞뒤 틀린말 없게 헛걸음 하지 마시라고 솔직하게 바로 말씀 드리겠습니다 
 
 
죽장만 받으며 초보자분은 30%~35%부터 규모 있으시거나 경력자 분은 40%~45% 부터 시작합니다 
 
 
사회에서도 무슨 직장을 가셔도 실적또는 경력없이 지원 인상부분 절대 없다는거 사장님들도 아실겁니다 
 
 
사장님이 보여주시는만큼 저희가 먼저 커미션 인상 각종 지원 해드리겠습니다 
 
 
정산장난 회원장난 절대없습니다 
 
 
소중한 파트너분들 회원님들 작은 돈 때문에 잃고싶지 않습니다 
 
 
정산은 주정산 입니다 사장님이 보여주신 만큼 주정산 , 보름정산 , 한달정산 원하시면 맞춰 드리겠습니다 
 
 
보안 실시간 게임등 기초부터 긴시간 걸려가며 천천히 탄탄하게 만든뒤에 
 
 
 
각종 사이트 자리없는곳은 예약까지 하면서 배너 광고쪽에도 
 
많이 투자 할정도로 자본력 자신있는 회사입니다. 
 
 
 
- 초보들분도 환영합니다 의지만 있으면 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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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러보시고 문의주시면 더욱 도움 되시라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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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행 원하시는 이벤트가 있으시면 최대한 맞춰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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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벤트페이지 또는 이용규정 성의없이 복사하거나 타이핑해서 적지 않습니다. 
 
 
 
이미지로 되어있어서 회원분들 보시기도 편합니다 그만큼 솔루션 , 디자인부터 작은것 하나하나 정성들여가며 만들었습니다 
 
 
 
다른회사보다 자부할 정도로 다양한 이벤트 준비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퍼주면 회사는 뭐가 남나 생각 하실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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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사이트 자리없는곳은 예약까지 하면서 배너 광고쪽에도 많이 투자 할정도로 자본력 자신있는 회사입니다 
 
 
최근 몇달간 대부분의 총판사장님들의 문의는 사기꾼이거나 선지원을바라는 쓰레기가 수두룩합니다. 
 
 
 
그중 몇안되는 진짜베기들은 오히려 1주일에 수백 추천벌고있던 분들이아님니다. 
 
 
 
이제막 시작한 초짜베기 사장님들이 오히려더 좋은열정과 배울려는 의지를 보여주심니다. 
 
 
 
저희는 과거에 수천 수억을벌었다고말해봤자 알수도없을뿐더라 그런이야기를할수록 더욱의심가는건 저희쪽입니다. 
 
 
 
확실하게 잘하시는분은 잘하시는 만큼 대우해드림니다. 
 
 
 
어딜가도  정싸이트에서 총판먹튀하는곳은 없습니다. 
 
 
그리고 초보자지만 열심히하시는분만큼 빛나는 보석이없다고 생각합니다.
 
카톡:VX07
 
텔레그램»Pureee7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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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 21 Mar 2018 19:37:38
<![CDATA[6.25전쟁과 흥남철수]]>

즐겁게 감상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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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 25 Apr 2016 11:24:09
<![CDATA[윤대장의 일곱번째 이야기-노니주스를 집에서 만들어 마셔 보자.]]> 윤대장의 일곱번째 이야기

노니주스를 집에서 만들어 마셔 보자.

필리핀에 온지 1년여 동안 무언가를 해 보려고 좌충우돌하며 있는 돈 다 까먹고 엄청 스트레스를 받으니 없던 변비가 생겼다.
변비가 너무 심해 손톱으로 파내며 고생하고 있을 때 지인이 노니주스를 마셔 보라고 했다.


노니주스를 마시기 시작한지 이틀만에 변이 쑥쑥 나오는데 그 기분이 하늘을 둥둥 떠 다니는 듯 좋았다.
 그 때부터 지금까지 배변 때문에 고생은 하지 않고 있다. 아침에 일어날 때 몸이 묵직해서 침대에서 뒤척 거리다가 알어나곤 했는데 노니주를 마시고 부터는 눈을 뜨면 상쾌함을 느낀다.


필리핀에 오기 전에 노니가 뭔지 모르다가 변비 때문에 알게 되어 지금은 내 사업 품목 중 하나가 되었다. 처가집 주변 산을 매입하여 농장을 조성하여 직접 노니주스 등을 생산하고 있다.

몸의 면역력을 키워주어 열대 지방에서 나는 산삼이라 불리는 노니. 혹시 주변에 노니 나무가 있다면 노니 주스를 직접 만들어 마셔 보자.


1. 6리터 혹은10리터 짜리 빈 생수 통을 준비한다.

2. 노랗거나 흰 노니 열매를 따 모은다. 초록색 열매는 아직 안 익었으니 따지 않는다.

3. 깨끗한 물로 씻은 후에 물기를 제거한다. 물기가 남아 있으면 곰팡이가 날 수 있다.

4. 준비한 빈 통에 넣고 뚜껑을 닫은 후에 그늘진 곳에 놓아 둔다.

5. 한달 동안 기다리면 자체 발효가 되면서 주스가 만들어 진다. 
    노니 열매 키로당 300미리 정도의 노니주스를 얻을 수 있다

6. 밑에 가라앉은 주스를 따라 내어 병에 담아 냉장고에 넣어 둔다.

7. 양이 많아 오래 두고 마실 것은 70도 정도로 30분간 살균 처리한 후 식혀 병에 담아 상온 보관한
다.

8. 소주잔 한잔 분량을 아침 저녁 공복에 마신다.

9. 아침에 일어날 때 몸이 가뿐하고, 감기 등 잔병에 잘 걸리지 않는 튼튼한 몸으로 바뀐 자신을 실감해보자.







]]>
Sun, 24 Apr 2016 11:46:56
<![CDATA[윤대장의 여섯번째 이야기-필리핀 여자와 결혼해서 한국 갔더니 이럴 수가...]]> 윤대장의 여섯번째 이야기

필리핀 여자와 결혼해서 한국 갔더니 이럴 수가...

 삼성전자 다니다가 퇴직하고 필리핀에 살고 있는 남자를 알게 되었다.
밤낮 휴일없이 평생 회사일에 충성하며 돈을 많이 모았고 캐나다 지사에 있을 때는 현지에 집도 사 놓았다고 한다.

 
 그러다 정년 퇴직하니 아내가 기다렸다는 듯이 이혼을 요구하더란다. 재산의 반을 떼어주고 이혼한 뒤 3년 동안 세계 각국을 떠돌며 살았다.

 그러다가 필리핀까지 오게 되었다. 필리핀에 여러달 살다가 스물한살 예쁜 아가씨를 만났다. 이혼한지 여러해가 지났고 평생 먹고 살 재산도 있어 다시 인생을 시작하기로 하고 결혼을 했다. 그리고 같이 한국에 들어갔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식당에서 어린 필리핀 신부와 같이 밥을 먹고 있거나 공원을 산책하고 있으면 주변 사람들이 노골적으로 계속 쳐다보거나 심한 경우 손가락질 하는 일도 여러번 있었다.

특히 오륙십대의 여자들이 심하게 굴었다. 계속 눈살을 찌푸리고 쳐다보면서 쑤군대곤 했다. 한국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에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서 밖에 나갈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남의 시선 의식할 필요없는 필리핀에서 살기로 하고 돌아 왔다.

남의 사생활에 간섭하지 않는 필리핀 사회에서 자유를 느꼈다.

영주권도 받았다.


경직된 사회.
남과 비교하는 사람들.
나와 다른 사람을 용납 못하는 편견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사는 곳.

그 곳이 한국이다.

그래서 나도 필리핀에 살고 있다.




]]>
Thu, 14 Apr 2016 19:38:42
<![CDATA[윤대장의 다섯번째 이야기]]>  어머니가 아니라 아내라구요?...


필리핀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내가 사는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바나나를 파는 젊은 남자가 내가 지나갈 때마다 나에게 반갑게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이름은 제임스, 나이는 이십대 중반에 체격도 건장하고 얼굴도 미남이었다. 그의 곁에는 항상 오십대로 보이는 여자가 있어서 나는 그의 어머니일 거라고 추측했다.

어느날 제임스에게 바나나를 사면서 물었다. 옆에 있는 여자가 어머니냐고. 그런데 뜻밖의 대답을 들었다.

아내라고 한다. 나이는 마흔아홉. 그들 부부는 허름한 판자집에 살았지만 항상 행복해 보였다.

내가 살던 세부 막탄섬 로컬 동네에 아주 조그만 빵집이 있었다.
이십대 초반의 여자가 빵을 팔았는데 상당히  예쁘고 피부도 하얗고 해서 관심을 가지고 지켜 보았다.  그녀 곁에는 항상 세살 정도의 딸이 하나 있었고 사십대 후반의 여자가 간혹 교대로 가게를 지켰다.


하루 한두번 그녀에게 잘 어울릴것 같은 이십대 후반 정도 나이의 남자가 빵을 가져와서 진열대를 채웠다. 나는 그 남자가 젊은 여자의 남편일 거라고 짐작을 했다.

어느 날 빵을 사면서 이것저것 물어 보았다. 그녀의 이름은 브렌다, 스물네살, 아이 아빠는 다른 여자 만나서 다른 지역에 살고 있다고 한다. 그럼 빵 가져오는 남자는 누구냐고 물으니 새아빠 즉 어머니의 남편이란다. 새아빠는 서른살 엄마는 마흔 여덟이란다.

에스엠 혹은 아얄라 같은 큰 쇼핑몰에 가면 육칠십대의 서양 남자가 스무살 정도 되는 필리핀 여자와 손잡고 다니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한국이었다면 사람들이 노골적으로 쳐다 보거나 대 놓고 욕을 하거나 할 수 있는 상황이건만 이곳 필리핀 사람들은 거의 신경 쓰지 않는다.

현지인들에게 물어 보았다. 늙은 서양 남자가 젊은 필리핀 여자 데리고 사는 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개인의 사생활이므로 신경 쓰지 않는다는 답이 대부분이었다. 돈 많은 서양 남자와 사는 필리핀 여자가 
부럽다는 젊은 여자도 있었다.

한국 사람들은 이상하리만큼 나이를 따지는 습성이 있다. 조금 친해졌다 싶으면 나이를 묻고 자신보다 어리면 반말하고 많으면 형이라 부른다. 나이차가 열살 이상 나는 결혼이면 신문 방송에서 큰 사건인양 떠든다.

나는 획일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남의 일에 이래라 저래라 하는 한국 사회가 부담스러웠는데 남의 사생활을 존중해 주는 간섭하지 않는 필리핀이 좋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무엇을 해도 간섭 받지 않는 그런 사회에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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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 8 Apr 2016 12:37:33
<![CDATA[윤대장의 네번째 이야기]]> 윤대장의 네번째 이야기

주유소 차리려다가 돈만 날리고...

필리핀 세부에 살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호세라는 이름의 한 필리핀 남자를 알게 되었다. 어느날 그가 내게 주유소 사업을 권하였다.
레이떼 섬에 있는 자기 고향에 가면 주유소가 거의 없어 간이 주유소를 차리면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이었다.

정식 주유소를 차리려면 자본도 많이 필요하고 허가 받는 것도 어려우니 소규모 간이 주유소를 차리면 돈도 얼마 안들고 허가도 바랑가이 홀에 가서 쉽게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자기 처남이 바랑가이 공무원이라서 허가를 금방 받을 수 있다고도 했다.


그래서 시장 조사차 같이 레이떼 섬에 가서 돌아 보았다.
오토바이를 타고 삼십여분을 달려도 주유소 하나 없고 길거리 여기저기에서 콜라병에 휘발유를 1리터씩 담아 팔고 있었다.

그런데 병에 담아 파는 휘발유 가격이 주유소 가격보다 훨씬 비쌌다. 소매상들이 삼십분 넘게 떨어진 주유소에 가서 여러 통을 한 번에 사다가 콜라 병에 담아 1리터 한병당 10페소 정도의 마진을 붙여 팔았다.

정유사에서 기름을 받으려면 최하 2천리터짜리 탱크가 필요하다고 했다. 세부에 있는 정유사에 2천리터를 주문하면 일반 주유소에 주는 가격에 레이떼 섬까지 배달비 리터당 2페소를 받고 배달해 준다는 것이다.

기름의 판매와 배달은 호세의 친척들이 하고 나는 모든 비용을 대고 이익금의 60%를 받기로 하고 계약서를 작성했다 시설비와 탱크값으로 일단 25만페소를 그에게 건내고 모든 것을 맡겼다.

처음에는 며칠이면 영업을 시작할 수 있을 것처럼 말하더니 여러 달이 지났지만 그는 계속 기다려 달라고 했다.
탱크를 주문하고 시설을 짓느라고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했다. 답답하여 계속 독촉하니 허가를 못 받아서 더 이상 진행을 못하게 되었다고 한다.

돈을 돌려달라 하니 다 써서 돌려줄 돈이 없다고 한다.
그럼 탱크를 팔아서 그 돈이라도 달라 하니 안 팔린다며  여러 달을 끌었다. 결국 모두 포기하고 말았다.
사기를 치려고 작정한 것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필리핀 사람에게 건너간 돈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진리를 또 한번 깨달야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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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 2 Apr 2016 18:51:44
<![CDATA[윤대장의 세번째 이야기-댕기에 걸렸는데...]]>  세번째 이야기입니다.

댕기에 걸렸는데 왜 병원에 안가고 약도 안먹어...

필리핀에 살다보니 주변에 댕기에 걸렸다는 사람들을 가끔 보게 된다.
한번은 아는 필리핀 사람의 10살짜리 아들이 댕기에 걸려 입원했다고 해서 병문안을 간 적이 있다.


가서 보니 댕기에는 치료약이 없다며 특별한 치료는 하지 않고 열이 날 때는 해열제를 투약하고 식욕이 없어 기운이 없다고 영양액 링겔을 놓아 주는게 다라고 한다.
 그렇게 일주일을 입원했는데 병원비가 4만페소 정도 나왔다고 해서 놀란 적이 있다.


아는 한국인이 댕기에 걸려 병원에 가니 입원하라고 해서 1독실에 5일 동안 있었다.
별다른 치료 없이 시간이 지나니 상태가 좋아져서 퇴원을 하려는대 병원비가 5만페소 넘게 나왔다고 한다.


내가 필리핀에 온지 3년쯤 되었울 때 나도 댕기에 걸렸다.
 처음에는 감기에 걸린 것으로 생각하고 평시처럼 생활하였다. 감기에는 치료제가 없고 약을 먹어도 일주일 안먹어도 일주일이면 낫는 가벼운 병이라 그냥 버티었다.


 그런데 열이 계속 오르더니 39도까지 올라갔다.
겁이 난 아내가 병원에 가라는걸 안가고 버티니 해열제를 사와서 먹으라는걸 안먹고 계속 버티었다. 하루 더 있으니 가슴에 빨간 작은 반점들이 생기더니 온 몸으로 퍼져갔다. 식욕이 없어 거의 먹지 못하니 몸에 기운이 없게 되었다. 그제서야 댕기에 걸린걸 확실히 알게 되었다.


아내가 빨리 병원에 가라며 걱정을 해 주었지만 나는 댕기에는 치료제가 없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정신력으로 버티기로 했다. 평소처럼 출근하여 일하니 주변 사람들은 거의 눈치를 못 채었다.
이삼일 더 지나니 열이 내리고 빨간 반점들도 사라지고 식욕도 돌아왔다.



결국 댕기에 걸리고 열흘만에 완전히 정상으로  돌아왔다. 내가 댕기에 걸렸어도 약도 안먹고 병원에도 가지 않은 것은 인체의 자연 치유력을 믿었기 때문이고 또 댕기 사망율이 0.001프로에 불과하다는걸 알았기 때문이다.
나에게 있어 댕기는 그저 모기 때문에 생기는 약간심한 감기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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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 24 Mar 2016 23:25:07
<![CDATA[읽으면 돈 되는 윤대장의 필리핀 생활 2]]> 필리핀 사람이 돈 빌려 달라 하거든...

읽으면 돈 되는 윤대장의 필리핀 생활 2


내가 만난 대부분의 필리핀 사람들은 조금 친해졌다 싶으면 돈을 빌려달라고 한다.

아주 가난한 사람들은 아기 우윳값이 없다거나 부모님이 아픈데 약을 살 돈이 없다며 몇백 페소나 기껏해야 이삼천페소를 빌려달라고 한다.
월급날 꼭 갚겠다고 약속을 한다. 일부는 이자까지 쳐서 갚겠다고 한다.

내가 필리핀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그들이 너무 불쌍해서 보통 거절하지 않고 돈을 빌려주었다. 그러나 월급날이 되서 자발적으로 돈을 갚으러 오는 경우는 없었다.

월급날 하루나 이틀 후에 가서 돈 갚으라 하면 다 쓰고 없다면서 다음번 월급날 꼭 갚겠다고 또 한번의 약속을 한다. 쉽게 약속하고 돌아서면 잊어 버리는게 가난한 필리판 사랍들의 습성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사업을 하거나 어느 정도 재산이 있어 먹고 사는 문제로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도 좀 친해졌다 싶으면 돈을 빌려 달라고 한다.

사업을 확장하기 위해서 혹은 집을 팔려고 하는데 집을 수리하고 페인트 칠을 해서 더 비싸게 받기 위해 돈이 필요하다고 한다. 요구하는 금액은 적게는 5만페소에서 많게는 이삼십만 페소에 이른다.

돈을 빌려 달라고 요구할. 때 그들이 보통 언급하는게 이자를 쳐서 갚겠다고 한다. 사채를 빌리면 월 십프로의 이자를 내야 한다며 5프로 혹은 무이자로 빌려 달라고 한다

불쌍해서 혹은 이자를 받을 욕심에 금액이 적던 많던 일단 돈을 빌려주면 이미 그 돈은 내 돈이 아니게 된다. 일부 성실히 이자를 몇 번 내는 경우도 있기는 했지만 제대로 원금까지 갚는 경우는 열명에 한명도 안된다.

그렇게 몇십만 페소를 날린 후에 내린 결론은 필리핀 사람들과의 돈 거래는 절대 하지 말고 정말 불쌍한 경우에는 받을 생각을 말고 그냥 준다는 것이다.

쉽게 약속하고 원하는 것을 얻으면 그 약속을 저버리는 것이 필리핀 사람들의 처새술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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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 5 Mar 2016 15:50:21
<![CDATA[읽으면 돈 되는 윤대장의 필리핀 생활 1]]> 읽으면 돈 되는 윤대장의 필리핀 생활



안녕하세요.첫번째글을 남기며 저의 글이 필리핀 생활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긴글을 시작합니다.

 한국어 학원하면 돈 될 줄 알고 뛰어 들었다가...

2013년과 2014년에 세부 이곳 저곳에 한국인이 운영하는 한국어 학교가 여러 곳 생겼었

습니다. 필리핀 사람이 운영하는 학교까지 세부시 만다웨시 막탄섬에서 총 10곳이 한국에

취업하고자 하는 필리핀 사람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쳤죠. 한국에서는 학원이라고 불렸겠

지만 필리핀에서는 두평 짜리 사무실 하나가 교실 겸 교무실이어도 학교라 부릅니다.

필리핀 사람이 한국에 취업하려면 한국산업인력관리공단에서 시행하는 한국어능력시험

에 합격해야만 합니다.

보통 일년에 한번 있는 시험에 필리핀 전역에서 만오천에서 이만명이 응시하고

사오천명이 한국에 갑니다. 2016년에는 6,800명이 한국에 취업할 예정이고요.

한국에 취업하면 필리핀에서 일할 때보다 열배 정도의 수입을 얻을 수 있으니

한국행 꿈을 꾸는 젊은이들이 넘쳐 나는건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일부 학교에서 대박을 치다보니 많은 한국 사람들이 깃발만 꼽으면 될 줄 알고 학교를 차

렸던 것이죠.

교재는 산업인력관리공단 웹사이트에 공개된 교재를 다운 받아 프린트 해서 쓰면 되니까

별다른 프로그램은 필요 없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학생 모집이다. 막탄섬 따미야에 위치

.한 학교는 시청 공무원의 도움으로 많은 학생이 북적이며 성업중이었다가

그 공무원과 관계를 끊고 독자적으로 운영하려다가 학생 모집에 어려움을 겪고

현재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습니다.

만다웨시에 있는 다른 학원은 광고를 엄청 했습니다. 사방팔방 전봇대마다 광고지를 붙이

고 수십대의 지푸니에 광고지를 달고 다니게 하고 큰 쇼핑몰에서 설명회도 하고

현지 신문에 광고도 했지만 큰 효과를 보지 못하고 일년간 적자에 허덕였습니다.

하지만 몇 안되는 학생들을 성심 성의껏 가르쳐 대부분을 시험에 합격 시킴으로써 소개가

계속 되어 현재는 겨우 적자는 면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한국인이 하는 다른 몇 곳의 학교는 6개월 내지 일년만에 대부분 문을 닫았습니다.

필리핀 사람들이 운영하는 학교들은 규모가 매우 작고 학생수가 몇명 안 되지만

직원이 없고 교실도 두세평 정도의 하나가 다여서 지출이 거의 없다 보니

꾸준히 운영돠고 있는걸 볼 수 있습니다 .

이처럼 철저한 시장조사와 추후계획이 없이 인기에 휩싸여 시작한 사업은

그 생명이 짧음은 물론이고 경쟁이 치열해 성공하기가 쉽지않음을 많은 사례를

들지 않아도 알수 있습니다.

새롭게 사업을 시작하려는 분들은 우선 현지생활에 적응을 할 수 있는지 부터

자신을 평가해 보고 하고자 하는 사업에 대해 철저한 시장 조사와 계획을

수립하여 작은 리스크 하나라도 줄이는 것이 사업성공의 수순이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필리핀 생활 도우미 윤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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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 25 Feb 2016 22:56:28
<![CDATA[감동실화]]>
여성은 식당의 종업원 24살 리즈 우드워드. 그녀는 이 식당의 7년 차 종업원입니다. 밤새 식당 일을 한 후 가게를 청소하고 퇴근하려던 그녀는 우연히 두 남자의 대화를 듣게 됩니다. 두 남자는 소방관 팀과 폴. 폴은 지난 밤 한 창고에 난 불을 끄기 위해 12시간 동안 진화작업에 투입됐습니다. 팀은 밤새 아무것도 먹지 못한 그를 데리고 식당을 찾았습니다. "이 식당에서 가장 큰 커피 주세요". 팀과 폴은 아침 식사를 하며 화재 사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화재 진압을 위해 불 속으로 뛰어든 소방관에 감동한 리즈는 그들에게 영수증 대신 쪽지를 건넸습니다.

"두 분의 아침 값을 제가 대신 계산할게요. 모두가 도망쳐 나오는 곳으로 뛰어 들어가 사람들을 구하는 당신들에게 정말 감사합니다. 두 분은 용감하고, 든든한 분들입니다. 오늘은 푹 쉬세요!"

소방관들은 이 따뜻한 쪽지 이야기를 페이스북에 올렸습니다. 이 식당에 간다면 그녀에게 많은 팁을 부탁한다는 말과 함께…. 그런데 얼마 뒤 팀은 자신에게 선행을 베푼 리즈가 사실은 진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리즈는 사지마비 환자인 아빠를 위해 밤에는 일을 하고 낮에는 그를 돌봤던 겁니다. 또 그녀는 휠체어를 탄 채 탑승할 수 있는 벤을 사기 위해 기부금을 모으는 중이었습니다. 팀은 페이스북을 통해 그녀의 사연을 전했고, 어려운 상황이지만 소방관들에게 선행을 베푼 리즈에 감동한 사람들은 그녀를 위해 기부를 했습니다.

단 하루 만에 모인 기부금액은 53000달러 부모님 결혼기념일인 12월 30일까지 모으려던 목표 금액 17000달러의 3배를 넘은 금액이었습니다. 이 금액이 모이는 데는 단 하루가 걸렸습니다.  

작은 선행이 불러온 놀라운 기적. 리즈는 말합니다. “부모님은 작은 도움이라도 누군가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고 항상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누군가를 도울 기회가 온다면 그들을 도우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단지 힘든 소방관들의 웃음을 보고 싶었을 뿐입니다.”]]>
Thu, 19 Nov 2015 23:24:20
<![CDATA[베토벤]]> 어느 의과 대학에서 교수가 학생들에게 질문을 했다.

"한 부부가 있는데, 남편은 매독에 걸렸고 아내는 심한 폐결핵에 걸려있다. 이 가정에는 아이들이 4명 있는데, 한 명은 병으로 죽었고, 남은 아이들은 결핵으로 누워 살아날 것 같지 않았다. 이 부인은 현재 임신 중인데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그러자 한 학생이 대뜸 소리쳤다.

"낙태 수술을 해야 합니다."

교수가 말했다.

"자네는 지금 베토벤을 죽였네."

이 불행한 상황에서 다섯 번 째로 태어난 사람이 바로 베토벤이었다.

어렸을때 들었던 엘리제를 위하여는 , 역사상 없을 노래였을수도 있었네요...

베토벤에 대해 살짝 알아볼가요?

그의 조부 루트비히는 플랑드르에서 이주한 본의 궁정악장이었고, 아버지 요한은 본의 궁정가수였으며, 어머니 마크달레나는 궁정요리장의 딸이며 궁정의 심부름꾼으로 미망인이었다. 이들 사이에서 1770년 베토벤이 태어났다. 그의 세례일은 70년 12월 17일로 되어 있으나 명확한 출생일은 알 수 없다.

플랑드르의 중후한 기질, 독일의 엄격한 논리, 라인지방의 희노애락이 심한 감정, 그리고 제 2 의 고향이 되는 빈의 부드러운 분위기가 베토벤음악의 배경이 된다.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에게서 피아노 기초를 배웠고 7세 때 연주회에서 피아노협주곡을 연주하여 풍부한 재능을 보여주었다. 소년시절 본에서 아버지를 비롯하여 몇 사람의 음악가로부터 개인교수를 받지만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람은 10세 때부터 베토벤을 가르친 C.G. 네페였다.

제 2 의 모차르트가 될 것이라고 그의 재능을 절찬한 네페는 J.S. 바흐와 C.P.E. 바흐의 작품을 가르쳤다. 11세 때 최초의 작품을 출판한 베토벤은 오르간과 피아노 연주가로서도 활동하였다. 16세 때 그는 모차르트를 동경하여 빈으로 유학을 떠났지만 어머니의 급병 소식을 듣고 본으로 되돌아왔다. 어머니의 죽음은 주벽이 심해진 아버지를 폐인으로 만들었고, 베토벤에게 집안 생계를 맡기는 결과가 되었다.

실의에 찬 그에게 용기를 준 것은 브로이닝가(家)의 따뜻한 분위기였으며 그 집 딸 엘레오노라는 베토벤의 첫 애인이 된다. 그의 후원자가 되는 발트슈타인백작도 87년에 본으로 부임하여 물심양면으로 베토벤을 도와준다. 92년 본을 방문한 F.J. 하이든에게 작곡가로서의 재능을 인정받은 베토벤은 하이든의 제자가 되려고 21세 때 빈으로 떠난다. 92년 빈에 도착하여 하이든·J. 센크·J.G. 알브레히츠베르거 밑에서 먼저 작곡기법을 배우는 동시에 피아노의 명수로서 귀족들 사이에서 점차 높은 평판을 얻게 된다.

빈 생활 3년째에 그는 연주회에서 피아니스트로서 자작 피아노협주곡 제 2 번을 연주하여 데뷔하였고, 작곡가로서는 《피아노 3중주곡집》을 출판하였다. 96년에는 보헤미아와 독일에 연주여행을 하는 등, 연주·작곡 양면에서 순조롭게 성장하여 1800년에는 그 자신의 연주회를 빈에서 열고 교향곡 제 1 번을 초연하였다. 이듬해에는 J. 구이차르디와 사랑에 빠져 피아노소나타 《월광》을 작곡하였고, 27세 무렵부터 느꼈던 난청이 음악가로서 치명적인 귓병으로 악화되자, 1802년에는 자살까지 결심하였다. 그러나 <하일리겐슈타트의 유서>를 계기로 교향곡 제 3 번 《영웅》, 교향곡 제 5 번 《운명》, 오페라 《피델리오》 등 수많은 걸작을 계속 작곡하게 되었다.

1808년에 베스트팔렌국왕이 카셀궁전에서 악장으로 초빙하자 좋은 경제적 조건 때문에 그는 카셀로 가려는 결심을 굳힌다. 그러나 그의 음악을 사랑하고, 재능을 존경하는 루돌프대공을 비롯한 빈의 세 귀족들은 연금을 서로 출자하여 베토벤을 평생 오스트리아에 머물러 살 수 있도록 해주었다.

1809년부터 12년까지의 시기에는 피아노협주곡 제 5 번 《황제》, 피아노 3중주곡 《대공》, 교향곡 제 7 번과 제 8 번 등 다채로운 작품을 작곡하였다. 13년부터 16년까지는 사랑편지 <내 불멸의 애인이여>의 상대방인 브렌타노부인과의 비극적인 사랑 때문에 그의 자주적 작곡활동은 침체하였으나, 17년에는 《전쟁교향곡》과 오페라 《피델리오》의 상연이 빈에서 대성공을 거두었다.

18년부터 청각을 거의 잃은 그는 필담(筆談)에 의해 생활해 가면서도 피아노 소나타 《하머클라비어》를 비롯해 후기의 걸작군을 창작해 갔다. 베토벤음악의 총결산인 교향곡 제 9 번 《합창》은 24년 5월 7일 빈의 쾰른트나투르극장에서 80명이 넘는 오케스트라, 4명의 독창자, 약 100명의 합창에 의해 초연되었다.

26년 12월부터 간경변 때문에 수술을 되풀이했으나, 27년 3월 23일에는 죽음을 깨닫고 유서를 썼다. 3월 26일 그는 56세의 나이로 생애를 끝마쳤다.

이렇듯..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네요..
하지만 56세 까지 밖에 못 살았지만. 그 사람의 노래는 우리의 마음속에 길이길이 기억남네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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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 19 Nov 2015 23:22:50
<![CDATA[간장막야]]> 간장막야: 명검도 사람의 손길이 가야 비로소 빛나듯이
사람의 성품도 원래는 악하므로 노력을 기울여야 선하게 될 수 있다는 의미.

오(吳)나라에 간장(干將)이라는 대장간의 명장(明匠)이 있었다.
어느 해 나라에서는 그에게 두 자루의 명검을 만들 것을 명령했다
.
그는 정선(精選)한 청동을 모아서 주조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청동은 3년이 지나도 녹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아내 막야(莫耶)가 머리카락과 손톱을 잘라 노에 넣고
어린 소녀 3백명이 풍구를 불어 청동을 녹여 마침내 명검을 만드는데 성공했다.

그래서 한 자루의 칼에는 간장(干將),
또다른 한자루에는 막야(莫耶)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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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 19 Nov 2015 23:21:25
<![CDATA[눌언민행]]> 눌언민행: 말는 더디고 행동에는 민첩하다는 뜻으로,
공자의 말에서 나왔다.

본래 유가에서는 배우는 사람의 자세로서 '눌언민행'해야만
스스로 가르침을 제대로 따를 수 있다는 것이다.

공자는 자신의 수제자로 칭송하던 안회를
"어기지 않는 것이 못난이 같다"고 하여
그의 실천 정신을 높이 평가했다.
요즈음이야 간혹 그런 경우가 있지만,
배우는 사람은 스승과 논쟁하거나
자신의 주장을 내세워 스승의 가르침과 대립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과거 성현들의 가르침이었다.

한번은 맹자(孟子) 에게 공도자(公都子)가 찾아와
 이렇게 물었다.
"다른 사람들이 선생님을 일컬어 쟁변을 좋아한다고 그러던데요?"
"내가 어찌 쟁변을 좋아하리요? 부득이하여 그럴 뿐이지." 


**맹자는 '구약현하(口若懸河)'로 손꼽히는 인물이었다.
그런 맹자도 행동보다 말이 앞선다는 식의 말은 듣기 싫었던 것이다.
눌언민행은 분명 말보다 행동에 앞장서라는 말이다.
말만 번지르하게 하고 행동이 전혀 따라가지 못하는 그런 부류의 사람들이 꼭 되새겨 보아야 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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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 19 Nov 2015 23:20:12
<![CDATA[가계야치]]> 가계야치: 집안에서 기르는 닭과 들의 꿩이란 뜻으로,
후에 자기 집의 것은 하찮게 여기고
남의 집 것만 좋게 여긴다는 비유로 쓰임.


진(晉)나라의 유익(庾翼)은 서법(書法)이 뛰어나 왕희지(王羲之)와 견줄만하다는 평을 받고있었다.
그리하여 전국에서 그의 서법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이 찾아왔다.
그런데 정작 유익의 집안 사람들이 자기의 서법은
배울 생각을 하지 않고
모두 당시 유행하던 왕희지의 서법을 배우자
어떤 사람에게 편지하기를,
"아이들이 집안의 닭은 천하게 여기고
들판의 꿩만 사랑하여
모두 왕희지의 서법만 배우니,
나를 그만 못하게 여긴 것이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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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 19 Nov 2015 23:18:39
<![CDATA[개권유익]]> 독서를 권장하는 말.

송(宋)나라 *태종(太宗)은 독서를 무척 좋아했는데,
특히 역사책 읽는 것을 즐겼다.

서적이 매우 많아 쉽사리 다 읽어 낼 것 같지 않은데도
그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태종은 학자 이방(李昉) 등에게 사서(辭書)를
편찬하도록 명하여, 7년 가까이 사서 편찬에 몰두했다.

그 결과 1천 권, 먼저 간행된 유서(類書) 등에 의해
모은 인용서(引用書)
1690종을 55개 부문으로 분류한 학술적으로도
대단한 가치가 있는 사서가 완성되었다.

태평 연간(太平年間)에 편찬되었으므로 그 연호를 따서
《태평총류(太平聰類)》라고 이름 붙였다.

태종은 크게 기뻐하며 매일을 하루같이 탐독했다.
책 이름도 《태평어람(太平御覽)》이라 고치고,
스스로 매일 세 권씩 읽도록 규칙을 정했다.
정무에 시달렸기 때문에 계획대로 읽지 못했을 때는
틈틈이 이를 보충했다.

이를 본 측근의 신하가 건강을 염려하자
태종은 이렇게 말했다.
"책을 펼치면 이로움이 있다. 나는 조금도 피로하지 않다."


*태종:재위 976~997년. 송(宋)나라의 제2대왕. 오월(吳越).북한(北漢)을 멸망시키고 중국을 통일함.
문치주의에 따른 중앙집권제를 확립함.]]>
Wed, 18 Nov 2015 15:46:53
<![CDATA[로뎅의 '칼레의 시민' 에 얽힌 일화와 노블레스 오블리주]]>
처음에 잉글랜드의 왕 에드워드 3세는 1년 동안 자신들을 껄끄럽게 한 칼레의 모든 시민들을 죽이려 했다. 그러나 칼레 측의 여러 번의 사절과 측근들의 조언으로 결국 그 말을 취소하게 된다. 대신 에드워드 3세는 칼레의 시민들에게 다른 조건을 내걸게 되었다.

“모든 시민들의 안전을 보장하겠다. 그러나 시민들 중 6명을 뽑아와라. 그들을 칼레 시민 전체를 대신하여 처형하겠다.”

모든 시민들은 한편으론 기뻤으나 다른 한편으론 6명을 어떻게 골라야 하는지 고민하는 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딱히 뽑기 힘드니 제비뽑기를 하자는 사람도 있었다.

그때 상위 부유층 중 한 사람인 '외스타슈 드 생 피에르(Eustache de Saint Pierre)'가 죽음을 자처하고 나서게 된다. 그 뒤로 고위관료, 상류층 등등이 직접 나서서 영국의 요구대로 목에 밧줄을 매고 자루옷을 입고 나오게 된다.

오귀스트 로댕의 조각 '칼레의 시민'은 바로 이 순간을 묘사한 것이다.

절망 속에서 꼼짝없이 죽을 운명이었던 이들 6명은 당시 잉글랜드 왕비였던 에노의 필리파(Philippa of Hainault)가 이들을 처형한다면 임신 중인 아이에게 불길한 일이 닥칠 것이라고 설득하여 극적으로 풀려나게 된다.

결국 이들의 용기 있는 행동으로 인해 모든 칼레의 시민들은 목숨을 건지게 되었다.

이것이 가진 자의 의무를 상징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가 탄생된 배경입니다. 단 6명의 지도자가 칼레를 구한 것처럼 세상을 밝히는 등불은 아주 작은 불빛에서 시작됩니다. 희생과 나눔을 의무로 여긴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더욱 밝아질 것입니다.

원래 노블레스는 ‘닭의 벼슬’ 을 의미하고 오블리주는 ‘달걀의 노른자’ 라는 뜻입니다. 이 두 단어를 합성해 만든 “노블레스 오블리주” 는 닭의 사명이 자기의 벼슬을 자랑함에 있지 않고 알을 낳는데 있음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사회 지도층의 도덕적 의무를 뜻하는 말로 사회로부터 정당한 대접을 받기 위해서는 자신이 누리는 명예(노블레스)만큼 의무(오블리주)를 다 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Wed, 18 Nov 2015 15:45:50
<![CDATA[두 무장의 상반된 행적‘우금과 방덕’]]>
우금(于禁), 자는 문칙(文則). 조조를 따라 30여 년간 전장을 누비며 무수한 전공을 세운 용장이다. 장수(張繡)의 반란으로 패주할 때 약탈을 저지른 청주병을 엄하게 질책하며 군율을 바로잡는 등 과감한 조치를 취하여 조조의 두터운 신임을 받기도 했다.

방덕(龐德), 자는 영명(令名). 서량 남안 출신으로, 마등 휘하의 장수였다가 마등이 죽자 그의 아들 마초의 부장이 되었다. 그러나 마초가 유장을 도우러 떠났을 때 방덕은 병이 나서 참가할 수가 없었는데, 제갈량의 계책에 걸린 마초가 사촌동생 마대와 함께 유비에게 투항하는 바람에 마초와도 갈라서게 되었다.

조조가 한중을 침공하자 방덕은 장로의 장수로 출전하여 용감하게 싸웠지만, 그의 용맹과 뛰어난 무용을 탐내던 조조의 계책에 걸려 항복하게 되었다. 조조는 방덕의 투지와 기량을 높이 평가, 그를 상장(上將)에 임명했다.

적벽에서 손권과 유비의 연합군에게 참패한 조조는 오의 주유가 형주를 취하려는 야심을 보이자 조인을 번성으로 보내 맞서게 했다. 두 진영의 군사들이 대치하고 있을 때, 제갈량이 재빠르게 군사를 움직여 결국 형주지역 대부분은 유비의 차지가 되었다.

위장(魏將) 조인은 양양을 뺏기고 다시 번성에서 관우의 맹공을 받자, 조조에게 구원을 요청했다. 이에 위왕 조조는 우금을 정남(征南) 장군으로 임명, 방덕을 부장(副將)으로 딸려주며 번성의 위급을 구하게 했다.

조조 진영의 여러 장수들은 방덕의 형 방유가 촉의 점령지인 한중에 남아있다는 점을 들어 방덕의 전향에 의심의 눈길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자 방덕은 ‘나는 승상의 배려로 위나라의 큰 은혜를 입은 몸이라 반드시 그 은혜에 보답할 것이다.’며 당찬 각오를 밝히고 자원해서 선봉장을 맡았다.

방덕은 ‘관우의 시신을 담아오거나, 아니면 내 시신이 담길 것’이라며 관(棺)을 끌고 출전했다. 방덕과 관우의 불꽃 튀는 공방전이 벌어졌다. 방덕이 워낙 죽기 살기로 덤비니 좀처럼 승부가 나지 않았다. 방덕은 말머리를 돌려 달아나는 척하다가 갑자기 돌아서서 활을 쏘았다. 방덕이 쏜 화살이 관우의 왼팔에 박혔다.

이때 위의 진채에서 징소리가 울렸다. 갑자기 심술이 난 우금이 후퇴를 알리는 징을 울린 것이다. 부장인 방덕이 관우를 죽여 큰 공이라도 세우게 되면 주장(主將)인 자신의 체면이 말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방덕은 부상을 입은 관우를 그냥 두고 물러나기가 아쉬웠지만 혹시 진중에 무슨 일이 일어났나 싶어 급히 진채로 돌아와 ‘왜 징을 울렸느냐?’고 물었다. 우금이 기어들어가는 말투로 얼버무렸다.

“위왕께서, 관우는 지모가 깊은 자이니 가볍게 맞서지 말라 하셨소. 관우가 비록 화살에 맞았으나 혹시 무슨 속임수가 있을까 해서….”

방덕은 속으로 분한 마음이 들었지만 우금이 상관이라 더 이상 따지지 못하고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우금은 군사들에게 번성 뒤쪽 양강 옆 골짜기에 진을 치게 하여 장기전 태세를 갖추게 했다. 여름철이라 장맛비가 며칠째 쏟아졌다. 진채로 돌아와 화살에 맞은 상처를 치료한 관우는 군사들에게 양강 상류에다 몰래 둑을 쌓게 했다. 물이 불어나면 둑을 일시에 무너뜨려 위군들을 모두 수장(水葬)시켜버릴 계획이었다.

이때 위군 진영에서도 진채가 수공(水攻)에 취약하지 않느냐고 지적하는 소리가 있었으나, 우금은 패신(敗神)이라도 씐 듯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마라!’며 듣지 않았다. 비는 계속 세차게 퍼부었다. 그날 밤 관우는 몰래 군사를 이끌고 가서 상류에 있는 둑을 무너뜨렸다.

지축을 흔드는 굉음과 함께 세찬 물길이 골짜기를 휩쓸고 지나가자, 위군의 진채는 대부분 물에 떠내려가거나 흙탕물 속에 잠겼다. 위군들은 대부분 잠자다가 변을 당했다. 겨우 산기슭으로 올라온 우금도, 용감하게 싸우며 저항하던 방덕도 꼼짝없이 촉군에게 사로잡혔다.

잡혀온 우금은 땅에 넙죽 엎드리며 ‘관공, 한번만 살려주시오.’하며 애걸했다. 이에 관우는 ‘내가 너를 죽이는 것은 개나 돼지를 죽이는 것과 무엇이 다르랴.’하며 우금을 형주로 압송하게 했다. 반면 방덕은 항복을 요구하는 관우를 꾸짖으며 꼿꼿하게 저항하다가 참형을 당했다. 관우는 방덕의 시신을 거두어 후히 장사지내 주도록 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조조는 ‘30년간이나 나를 따라다닌 우금이, 내 사람이 된 지 2년도 채 안된 방덕 만도 못하구나.’하면서 눈물을 흘리며 방덕의 충성심을 치하했다. 그리고 비굴하게 살아 돌아온 우금은 만나주지도 않았다.

세월이 흘러 조조가 죽고 그의 아들 조비가 위왕으로 즉위하자, 방덕에게는 장후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우금은 조비의 명으로 조조 무덤의 조경 책임자가 되었다. 우금이 임지에 도착해보니 조조의 무덤 안에 벽화가 그려져 있었다.

촉장 관우가 수공으로 위군을 쓸어버리는 장면이었다. 관우가 높은 자리에 앉아있고 아래에서 한 장수가 성난 얼굴로 노려보고 서 있는데, 한 장수는 땅에 엎드려 애처롭게 목숨을 빌고 있었다.

성난 얼굴로 서 있는 장수는 방덕이고, 땅에 엎드려 목숨을 빌고 있는 장수는 바로 자신이었다. 자신을 비꼬는 그림이 분명했다. 위왕 조비가 먼저 사람을 보내 벽화 그림을 그리게 한 다음, 자신을 그곳 책임자로 보내 항장(降將)의 비굴한 삶을 조롱한 것이었다.

참담한 자신의 모습이 그려진 벽화를 본 우금은 마침내 울화병으로 몸져눕게 되었고, 얼마 안 있어 세상을 뜨고 말았다. 관우에게 목숨을 구걸하여 다시 살아난 지 채 일 년도 안 된 때였다.

전장에서 싸우다 사로잡힌 장수가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우금과 방덕이 온몸으로 그 해답을 가르쳐주고 있는 것이리라.]]>
Wed, 18 Nov 2015 15:44:39
<![CDATA[지용(智勇)을 겸비한 무장 '장료']]>
“여포, 이 한심한 작자야! 죽는 것이 무엇이 두려워 그 발광이냐?”

여포진영의 일급장수인 문원(文遠) 장료(張遼)였다. 그는 형 집행을 위해 끌려나오면서도 조조를 욕했다. 조조가 칼을 뽑아 그의 목을 베려 하자, 함께 있던 유비가 ‘저 사람은 마음이 곧은 사람이니 살려서 쓰도록 하십시오.’하며 말렸다. 좀처럼 남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지 않는 관우도 조조 앞에 무릎을 꿇으며 간청했다.

“장료는 충의의 남아입니다. 부디 목숨을 보존케 해주십시오.”

조조는 껄껄 웃으며 ‘한번 장난을 쳐본 것뿐이오.’하며 친히 장료의 포승을 풀어주고 자신이 입던 옷을 벗어 그에게 입혀주었다. 패장(敗將)으로서 죽음 대신 극진한 후대를 받은 장료는 이후 여포진영의 다른 장수들의 항복을 받아내어 조조의 은의에 보답하고 조조의 장수가 되었다. 장료는 조조에게서 중랑장이라는 벼슬을 받았다.

그 후, 유비가 조조에게 쫓겨 원소에게로 도망치고 유비의 처자를 맡아 보호하고 있던 관우가 조조의 대군에게 포위되었을 때, 장료는 지난날 관우가 조조에게 무릎을 꿇어가며 자신을 구해준 정을 잊지 않고 관우를 찾아갔다.

장료는 ‘우선 조조에게 항복하여 훗날을 기약하도록 하시라.’고 관우에게 권했다. 결국 관우는 장료의 청을 받아들여 조조에게 항복했다. 유비가 있는 곳을 알게 되면 즉시 떠난다는 조건으로. 조조는 관우를 제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했지만, 관우가 원소진영의 두 맹장 안량과 문추를 목 베어 조조의 은혜를 갚고 오관돌파를 하며 유비에게로 가버리는 것은 너무나 잘 알려진 사실이 아닌가.

장료와 관우, 두 사람은 처음부터 적으로 만났으나 서로 통하는 바가 있고 마음이 끌려 이렇게 한 번씩 서로의 목숨을 구해준다. 그리고 서로 적이지만 상대방에 대해 신의를 지키고 속 깊은 우정을 나눈다.

조조가 적벽대전에서 참패한 후, 장료는 이전 악진과 함께 전략요충지인 합비성을 지키는 책임을 맡았다. 그런데 이전과 악진은 조조가 창업할 때부터 함께 활약한 장수들이었고, 장료는 뒤에 합류한 장수였으므로 세 사람 사이에 자연히 알력이 생겼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조조는 능력을 위주로 사람을 썼기 때문에 장수로서의 자질이 앞선 장료를 책임자로, 이전과 악진을 부장(副將)으로 임명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밀어낸 꼴이 되었다. 특히 이전은 장료의 지시를 받는 것을 아주 고깝게 생각했다. 그러나 장료는 이에 개의치 않고 매사에 솔선하여 앞장섰다.

이즈음, 오의 손권은 맹장 태사자를 앞세워 합비성을 공략했다. 장료는 태사자와 한바탕 전투를 벌였다. 불꽃 튀는 명승부전이 펼쳐졌지만 좀처럼 승부가 나지 않았다.

장료는 태사자가 첩자를 합비성 안에 침투시켜 밤에 불을 지르는 것을 신호로 성 안에 돌진하기로 한 계책을 알아채고, 적의 계략을 역이용하여 태사자를 유인하기로 했다. 장료는 부하들에게 영을 내렸다.

“성안에 불을 지르고 모반이 일어난 것처럼 큰소리로 외쳐라! 내가 신호를 하면 성문을 활짝 열어라!”

이런 사정을 알 리 없는 태사자는 합비성 안에서 불길이 치솟고 곧이어 성문이 열리자, 군사들과 함께 성안으로 뛰어들었다. 그때 갑자기 성 위에서 돌덩이가 떨어지고 화살이 빗발치듯 날아들자, 오병들은 모두 독안에 든 쥐 신세가 되어 거의 전멸 당하고 말았다. 태사자는 온몸에 화살을 맞고 낙마, 그 부상이 악화되어 숨졌다.

장료는 용맹만이 아닌, 지략으로 오나라가 자랑하는 맹장 태사자를 죽이고 오군을 참패시켰던 것이다. 그 후 군사를 재정비한 손권이 태사자의 원수를 갚으려고 다시 10만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오자, 장료는 악진에게 성을 지키게 하고 이전과 자신은 함께 나아가 싸우는 전략을 세웠다.

그러나 장료의 지시를 받는 것을 탐탁치 않게 생각하고 있던 이전은 나가기가 싫은 듯 아무 대답이 없었다. 그러자 장료가 결연히 말했다.

“두 장군은 성에 남으시오. 나 혼자 나가서 한바탕 죽기로 싸우겠소!”

장료가 혼자 출진을 서두르자, 아무 말이 없던 이전은 그때서야 마음이 움직였는지 벌떡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장군이 앞장을 서는데 부장인 제가 어찌 따르지 않겠소? 제게도 할 일을 일러주시오.”

장료는 이전이 여러 가지 불편했던 감정을 씻고 이제 마음으로 따르게 되자, 더욱 겸손하게 작전을 지시했다. 세 장수는 비로소 한마음으로 뭉치게 되었다. 부하를 마음으로 따르게 하려면 솔선하여 모범을 보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임을 장료가 몸소 가르쳐준 것이다.

다시 격전이 벌어졌다. 이때 손권 진영에서는 오의 최고 용장 감녕이 정병 100기를 이끌고 와서 장료의 진채를 습격하여 마음껏 짓밟고 돌아가는 등 맹위를 떨쳤으나, 장료의 군세를 결정적으로 꺾지는 못했다. 이로써 어느 정도 분이 풀린 손권은 감녕을 돌아보며 이렇게 칭찬했다고 한다.

“조조에게는 장료가 있고, 내게는 감녕이 있다!”

이후에도 장료는 손권의 계속된 공격으로부터 끝까지 합비성을 지켜냈다.

후일 조조가 죽고 그의 아들 조비가 몸소 30만 대군을 이끌고 오와 대진했을 때, 노령에 접어든 장료도 자원하여 출전했다. 장료는 앞장서서 용감하게 싸우다가 오장(吳將) 정봉이 쏜 화살에 허리를 맞고 말에서 떨어져 숨을 거두었다.

주로 오와의 전투에서 맹위를 떨친 장료의 무용은 삼국지연의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는 못하다. 그러나 ‘울던 아이도 장료가 왔다하면 울음을 뚝 그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오나라 사람들은 그의 이름만 들어도 벌벌 떨었다고 한다.

장료, 여포의 장수로 등장했지만 한번 주인을 바꾸어 조조의 장수로 화려하게 성공한 무장이다. 계책을 써서 태사자를 잡았으니 지략도 뛰어났고, 고참 장수들을 마음으로 따르게 할 만큼 덕망도 갖추었다. 또, 적장 관우와 따뜻한 우정을 나누었으니 인간미도 있었다. 늙어서도 전쟁터에 나가 싸우다가 죽었으니 마무리도 나무랄 데가 없지 않았나 싶다.]]>
Wed, 18 Nov 2015 15:43:26
<![CDATA[각자위정]]>
춘추 시대의 일이다. 송(宋)나라가 진(晉)나라와 서로 협력하였기 때문에 송나라와 초(楚)나라는 사이가 벌어졌다.
이에 초나라 장왕(莊王)은 실력을 과시하기 위해
동맹국인 정(鄭)나라에 명하여 송나라를 치게 했다.

 결전 전야에 송나라의 대장 화원(華元)은
장졸들의 사기를 돋우기 위해 특별히 양고기를 지급했다.
장졸들은 모두 크게 기뻐했지만,
화원의 마차부 양짐(羊斟)만은 이 양고기를 먹지 못했다.

 어는 부장(副將)이 그 이유를 묻자 화원은 이렇게 대답했다.
"마차부 따위를 먹일 필요는 없다.
마차부는 전쟁과는 아무 관계가 없으니,
내가 한 일에 아무 참견 말게."

 이튿날 양군의 접전이 시작되었다.
화원은 양짐이 모는 마차 위에서 지휘를 했다.
송나라와 정나라의 군사가 모두 잘 싸워 쉽게 승패가 나지 않아 화원이 양짐에게 명령했다.
"마차를 적의 병력이 허술한 오른쪽으로 돌려라."

그러나 양짐은 반대로 정나라 군사가 밀집해 있는
왼쪽으로 마차를 몰았다.
당황한 화원이 소리쳤다.
"아니, 어디로 가려는 것이냐!"
"어제의 양고기는 당신의 뜻이며,
오늘의 이 일은 나의 생각이오."

 양짐이 이렇게 말하며 곧바로 정나라 군사가 모여 있는 곳으로 마차를 몰았기 때문에 화원은 마침내 붙잡히고 말았다.

대장이 포로가 된 것을 본 송나라는 전의를 상실했다.
그 결과 250여 명의 군사가 적군에게 사로잡히고 사공(司空)까지 포로가 되었다.
정나라 군사는 도합 460량의 병거(兵車)를 포획하고 대승을 거두었다.

 송나라의 대패는 바로 양짐이 화원의 지휘에 따르지 않고 "各自爲政"했기 때문이다]]>
Wed, 18 Nov 2015 15:42:02
<![CDATA[서울 불바다’가 어려운 까닭 ]]> 서울 불바다’가 어려운 까닭?

» 김종대 <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 ▶

 
★*… “북한의 도발 위협보다 대형마트 휴무가 더 불편한 일”이라고 말하는 서울의 중년들에게 북한은 거짓말하는 양치기 소년일 뿐이다. 북한이 말로 뱉어낸 위협대로라면 서울은 벌써 수십번은 불바다가 되고도 남았을 일이지만 이제 그런 ‘한반도 묵시록’을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사실 김정은 입장에서 서울을 핵무기나 장사정포로 타격하기에는 결정적인 문제가 있다.

첫째, 이미 수도권에는 수많은 외국인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2012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에 거주하는 외국인 주민은 모두 140만9577명으로 전년보다 11.4% 증가했다. 국적별로는 한국계 중국인을 포함한 중국 국적자가 78만1616명(55.4%)으로 가장 많고 그다음으로는 베트남 16만2254명(11.5%), 미국 6만8648명(4.9%), 남아시아 6만2862명(4.5%), 필리핀 5만9735명(4.2%) 순이다. 북한이 서울을 ‘불바다’, ‘핵바다’로 만들기 위해 장사정포를 마구 쏘아댄다면 그들의 동맹국인 중국과 세계 여러 나라가 자국민 보호를 위한 조처를 취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장사정포 사정거리 안에 있는 수도권에 외국인이 몰려와 있다. 경기 안산시(6만583명), 서울 영등포구(5만7180명), 구로구(4만3239명), 경기 수원시(4만537명)로 모두 북한 장사정포 사정거리(70㎞) 안이다. 북한은 세계와 전쟁을 해야 한다.

둘째, 전쟁 때 이 외국인들은 탈출하기 어렵다. 특히 영미계의 외국인이 전쟁 때 본국으로 안전하게 탈출하려면 각국 대사관이 마련한 비상계획대로 성남 서울공항에 집결해야 한다. 여기서 본국으로 가는 비행기에 타야 하는데, 이명박 전 대통령은 서울공항 인근에 제2롯데월드 건립을 허가하여 사실상 유사시 서울공항의 기능을 마비시켰다. 그다음 집결지는 오산 미 공군기지인데, 우리 군은 교통을 전면 통제하게 되면 걸어서라도 가야 하는데 꼬박 하루가 걸린다. 결국 퇴로가 차단된 외국인들은 오도 가도 못하고 서울 불바다의 인질이 되는데, 이것이 김정은을 난처하게 한다.



▲ 북한 장거리 로켓 은하3호

★*… 셋째, 서울이라는 이상한 도시는 북이 쏠 테면 쏘라는 식으로 배짱을 부린다. 현재 수도권에 화생방에 대비한 1등급 대피시설은 23곳(6000평)에 설치돼 있는데, 이는 핵전쟁에서 전체 거주자의 0.08%밖에 수용할 수 없다. 방사성 진료기관 역시 1차 진료기관이 12곳, 2차 진료기관이 14곳밖에 없기 때문에 유사시 사상자 처리 대책이 거의 없다. 핵전쟁이 아닌 재래식 무기에 의한 공격에는 총 2만6000여곳의 대피시설에서 견딘다고 하지만 에너지·식수·통신 공급이 전면 차단되기 때문에 버티기 어렵다. 그렇다고 서울시민을 피난시키는 정부 계획을 세우기도 불가능하다. 그렇게 무방비로 목숨을 내놓겠다는데 이것은 김정은을 더욱더 난처하게 한다.

역사상 적의 대포가 불과 40㎞ 밖에서 위협하는 전쟁터에 1500만명이 거주하는 경우는 없었다. 비좁은 전쟁터에 이렇게 높은 인구밀도는 역사상 어떤 전쟁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일이다. 서울은 이미 대한민국의 도시가 아니라 전세계가 공유하는 도시다. 전쟁 위협 앞에서도 천진난만하게 자신의 안위를 걱정하지 않는 서울은 냉전시대에 만들어진 억지와 방어라는 안보개념으로 설명되지 않는 아주 이상한 도시다. 논리적으로 이해할 수 없으나 직관적으로는 “전쟁은 없다”는 사실을 서울시민은 이미 간파하고 있다. 그걸 아는 북한은 자신의 불바다 협박이 통하지 않는다는 데 크게 허탈해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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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e, 17 Nov 2015 23:20:04
<![CDATA[빌 게이츠家의 자녀 교육 10계명 ]]> 빌 게이츠家의 자녀 교육 10계명

 

 

#1. 큰돈을 물려주면 결코 창의적인 아이가 되지 못 한다.

진짜 부자 아빠는 자녀에게 큰 돈을 주지 않는다.

부모가 부자인 아이들은 열심히 일하지 않아도 되고,

부모에게서 재산을 물려받아 풍족하게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후손들의 무능함과 허영심, 낭비가 독이 된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는 꼭 알아야 할 것이다.

재산은"너에게 남겨줄 유산이 아닌 사회의

환원 할 것이다."라고 가르쳐야 한 다.

#2. 부모가 나서서 아이의 인맥 네트워크를 넓혀준다.

빌게이츠를 세계 최고 갑부로 만든 명문학교

친구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는 레이크사이드 중,고등학교와 하버드 대학을 나왔다.

#3. 단점을 보완해 주고 뜻이 통하는 친구를 사귄다.

평생의 재산이 될 인간 관계는 학교에서 부터 시작 한다.

빌게이츠는 레이크사이드 고등학교와 하버드 대학에서

폴 앨런과 스티브 발머라는 두 친구를 만나 세계 최고의

소프트웨어 회사를 키웠다.

두 친구에게는 어떤 고민도 털어 놓을

정도로 매우 가까운 친구이다.

#4. 어릴 때에는 공상과학소설을 많이 읽는다.

그는 아직도 공상우주과학 영화인"스타 트렉"

열광하는 팬이다.

일곱살 때부터 시애틀에서 열린 세계박람회는 그에게

과학의 세계를 동경하기 시작 한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어려서부터 백과사전을 외우는 것과 위인들의

이야기를 빠짐없이 읽었다.

#5. 어머니의 선물이 때로는 아이의 인생을 바꾼다.

빌게이츠는 어머니가 사 주신 컴퓨터로 지금의 갑부가

되었다.

빌게이츠는"미래로 가는 길"에서 아이와 컴퓨터는 죽이

잘 맞는다.

아이는 새로운 물건에 주눅 들지 않고 호기심에 차서

컴퓨터를 건드리면 컴퓨터는 즉각 반응을 한다.

자녀들이 컴퓨터에 푹 빠져 있는 것을 보고 걱정스러워하는

부모가 많겠지만,컴퓨터는 아이들이 매료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 한 것이다.

그러기에 올바른 사용법을 알려 주면 몰입하는 피해를 막아 줄 것이다.

 

#6. 신문을 보며 세상보는 안목과 관심 분야를 넓힌다.

지금도 일주일 동안의 신문들을 처음부터 끝까지 빼 놓지

않고 읽는 습관이 있다.

신문이 자신의 관심 분야를 넓혀주고 미래의 일을 알려 주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무리 컴퓨터가 모든 일을 다 한 다고 해도 책만큼은 완전히 대체 하지 못할 것이다.

그 이유는 책이 사람으로 하여금 애착을 느끼게 만드는 장점을 지녔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도 자신의 두 아이들에게 컴퓨터보다도 책을

사주었다.

이는 우리나라 부모들이 마음에 꼭 새겨두어야 할 대목이다.

컴퓨터황제가 컴퓨터보다도 책을 먼저 가까이하도록 한 다는 것은 매우 인상적이며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7. 부잣집 아이라고 결코 곱게 키우지 말아라.

초등학교 6학년때 학교 성적도 형편없었고, 가족과의 관계도 원만하지 않아 아동심리학자에게 상담을 받기도 했다.

그의 카운슬러는 전통적인 행동방식을 따르라고 강요하거나,

좀더 고분고분해지라고 타이르는 건 쓸데없는 일이라고

충고했다.

많은 영재들이 부족 한 사회성이 빌게이츠에게도 부족했던

것 같다.

빌게이츠의 부모는 외골수로 빠지기 쉬운 아들을 위해 보이

스카웃 캠프에도 보내고, 테니스와 수상스키도 가르쳤다.

요일에 따라 다른 색깔의 옷을 입히는 것은 물론 식사도 규칙적으로 하도록 가르쳤고, 모든 일을 계획적으로 실행하여 시간 낭비를 최소화하는 습관을 어머니로부터 배웠다.

어디든지 어머니는 자식들에게 큰 거울인 것 같다.

#8. 기회가 왔을 때 머뭇거리지 말고 과감하게 도전 한다.

빌게이츠가 하버드대를 휴학하고 IT산업에 뛰어 들겠다고

했을 때 우리 보통 부모들은 과연 찬성 했을까?

정확 한 예측과 한 발 앞선 실행이 오늘의 빌게이츠를

만들었다.

 

#9.어린시절 다양 한 경험은 자라서 든든 한 사업 밑천이다.

숙제나 악기 연주 등 그날 해야 할 일은 반드시 그날 해

치웠다.

남에게 지는 것을 싫어 한 빌게이츠는 네다섯 장이 면 되는

리포트를 서른 페이지가 넘는 논문으로 제출하기도 했다.

아침형 인간인 빌게이츠는 새벽 3시 에 일어나 두세 시간 정도 책을 읽는 습관을 아직까지도 실천하고 있다.

#10. 부모가 자선에 앞장서면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본을 받는다.

훌륭 한 부모님을 역할 모델로 삼으면서 살아간다.

시애틀의 이름난 은행가와 변호사 집안이지만, 부자가 사회적으로 어떻게 처신해야하는지에 대해 모범을 보여 주므로써 부자의 의무를 다 한 가문으로 평가 받는다.

거의 갑부였지만,돈에 대 한 철학만큼은 매우 명확했다.

빌게이츠 아버지는 상속세 폐지 반대운동을 부도 한

인물로도 유명하다.

"현재 미국의 빈부 격차는 사상 최고 수준인데 부자들이

계속 욕심을 부리면 미국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는 망한다"면서

이를 반대했다는 이야기는 우리 모두에게 많은 교훈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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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e, 17 Nov 2015 23:18:46
<![CDATA[국회의원]]> ]]> Tue, 17 Nov 2015 23:17:12 <![CDATA[미국한테 덤벼들겠다는 세상물정 모르는 해외유학파 김정은의 도박]]>

미국한테 덤벼들겠다는 세상물정 모르는 해외유학파 김정은의 도박

젖비린내 나는 김정은은 세계 전쟁사를 읽어라!

 

 

 

 

 

 
 
 
▲ 북괴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29일 오전 0시 30분 전략미사일 부대의 화력타격 임무에 관한 작전회의를 긴급 소집하고 사격 대기상태에 들어갈 것을 지시했다고 조선중앙TV가 보도했다. 
 

한밤중에 쇼하는 김정은은 몽유병환자인가?

북괴 김정은의 미국에 대한 도발메시지는 29일 0시 30분 급작스럽게 군 '전략로켓부대의 화력타격임무에 관한 작전회의'를 소집한 이후 나온 것이어서 주목하고 있다.

김정은은 긴급회의에서 “아군전략로케트 들이 임의의 시각에 미국 본토와 하와이(Hawaii), 괌도(Gaum)를 비롯한 미제 침략군기지들, 남조선 주둔 미군기지를 타격할 수 있게 사격대기상태에 들어가라”고 지시하고 미사일 기술준비공정계획서에 최종 서명했다고 중앙통신이 전했다.

이날 회의에는 현영철 총참모장, 리영길 작전국장, 김영철 정찰총국장 겸 부총참모장, 김락겸 전략로켓군 사령관 등이 참석한 가운데, 특히 미군 B-2 스텔스 폭격기의 한반도 진입은 “핵전쟁을 일으키겠다는 최후통첩”이라며 “미제의 핵공갈에는 무자비한 핵공격으로, 침략전쟁에는 정의의 전면전쟁으로 대답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북한의 미사일 부대가 언제든지 실전 발사를 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할 것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져 우리정부와 미국에서는 경계 늦추지 않고 있다.

일개 국가의 통치권자가 전쟁도 아닌 상황에서 새벽에 부랴 부랴 회의를 하는 모습을 보고 세계는 실소를 금치 않을 수 없고, 어린시절 해외에서 유학생활을 하였다는 김정은이 세계최강 미국에 대해 위협을 한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무모한 것인지에 대하여 세계가 비웃고 있다.
 
 
▲ 일본 해군역사상 군신으로 추앙받는 야마모토 제독은 1941년 12월 7일 성공적인 진주만 공격성공에도 불구하고 “잠자는 거인을 깨워 끔찍한 결과를 낳을 것”이라는 유명한 일화를 남겼다. 결국 일본은 1945년까지 세계역사상 가장 혹독한 보복을 받고 참혹한 패배를 경험하게 된다.(사진은 Tora, Tora, Tora 영화의 장면) 
 

김정은은 무모하게 미국에게 도전한 일본의 패망을 기억하라!

김정은은 10대에 스위스 베른의 리베펠트-슈타인횔츨리 공립학교에 다녀서 서구의 교육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럽에서는 필수적으로 세계사를 배우는데 인류의 광기로 일으킨 1, 2차 세계대전을 비중있게 가르킨다. 특히 EU(유럽연합)의 출범으로 다시는 인류가 전쟁을 통해 분쟁을 해결하려는 어리석은 방식을 채택하지 않기 위하여 독일, 이탈리아, 일본이 결성한 삼국동맹의 패전을 가르치고 있다.

삼국동맹 중에서 일본은 1941년 12월 7일 일요일에 태평양의 진주만을 공습함으로써 미국과 개전을 선언한다. 당시 일본 해군 연합함대사령관이었던 야마모토 이소로쿠(山本 五十六) 제독은 미국의 허를 찌르는 철두철미한 진주만 공습 계획을 성공시킴으로써 일본에서는 군신(軍神)의 반열에 올랐다.

하지만 야마모토 제독은 태평양전쟁 전에는 미국 워싱턴에서 파견나가 하버드 대학교 수학한만큼 누구보다도 미국에 대하여 잘 알고 있었고, 미국과의 전쟁에는 반드시 패배할 것이라고 주장하던 해군 제독이었다.

당시 군국주의가 지배하였던 일본정부의 명령에 따라 미국과 전쟁을 시작해야 한다는 압력에 결국 최선봉장으로써 진주만 공습을 감행하였다. 하지만 야마모토 제독은 “미국에 대한 선전포고”가 진주만 기습 후에 미국 정부에게 전달된 것을 알고, 진주만 공습의 성공신호인 "Tora! Tora! Tora!"에 흥분에 도취된 해군 지휘부에게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을 남겼다.

"I fear all we have done is to awaken a sleeping giant and fill him with a terrible resolve(우리는 이 일로 미국을 크게 자극했다. 잠자는 거인을 깨워 끔찍한 결과를 낳을 것이 나는 두렵다)."

결국 야마모토 제독이 우려하였던 당시 일본과 경제규모가 100배 이상 큰 미국을 상대로 직접적으로 전쟁을 일으키게 된 것이고, 그 결과는 3년 뒤 일본에게 참혹한 결과를 안겨주게 되었다. 미국을 상대로 한 무모한 전쟁을 벌인 일본의 패전을 가르치고 있는 유럽에서 유학한 김정은은 설마 이러한 내용을 모를 리가 없다.
 
 
▲ 미국을 상대로 무모한 전쟁을 벌인 일본은 1945년 도쿄공습으로 전의를 완전 상실한다. 
폭격전의 도쿄와 뼈대만 남은 폭격 후의 동일지역(1945.3.10 도쿄공습)
 
김정은은 미국에 도발한 일본의 참혹한 최후를 기억하니 잠이 오지 않는가?

미국에게 무모하게 도전한 일본에 대하여 미국정부는 간단히 물러서지 않았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막바지로 치닫던 1945년 3월 10일 일본을 무력화시키고 전쟁의 조기 종결을 위하여 미국은 일본의 수도인 도쿄와 그 주변 일대에 대량의 소이탄을 투하한 도쿄공습을 감행한다.

미군은 10일 새벽 약 344기의 B-29 슈퍼포트리스 폭격기를 이용해 대당 7톤, 총 2천 4백여 톤, 약 100만 발에 달하는 대량의 폭탄을 도쿄 상공에서 투하하였다. 3시간이 채 안되는 이 공습으로 도쿄와 그 일대는 쑥대밭이 되었고 이 날 하루만 10만 여명의 주민이 목숨을 잃었다.

당시 일본 도쿄의 대다수 가옥이 전소되었으며, 도쿄의 50% 이상이 공습에 의해 파괴되었고, 일본은 도쿄공습 이후 전의를 거의상실하게 되었다. 이후 곧 항복을 하지 않자 연달아 8월 6일에는 히로시마, 9일에는 나가사키에 원폭을 투하하여 회복불능으로 만들어 버렸다.
미국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공습으로 발생한 사상자는 26만명에 달했고, 8월 15일 항복선언을 세계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함으로써 종전되었다.
 
 
▲ 미국은 일본이 바로 항복하지 않자 추가로 1945년 8월 6-9일에 걸쳐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폭을 투하한다. 
히로시마가 폭격당하기 전의 모습(왼쪽)과 흔적도 없이 사라진 폭격후의 모습(오른쪽)
 
 
 
 
▲ 핵탄두 장착가능한 스텔스, 하푼 미사일을 장착할 수 있는 B-52 폭격기. 최대 27톤까지 폭탄을 적재할 수 있으며 죽음의 제왕이라고 불리며, 2040년까지 운영할 계획으로 현존하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다. 
 

미군 폭격기에 출현에 놀란 김정은은 정신공황 상태

그간 우리정부에 대하여 비방을 펼치던 김정은이 갑자기 새벽에 군간부에게 미사일 공격 준비를 하라는 등의 지시를 한 것은 미군 전폭기의 출현에 겁을 먹은 것으로 보인다.

재래식 무기였던 B-29 폭격기에 의해 일본이 초토화 되었던 것을 알고 있을 김정은은 B-52 및 B-2 스텔스 폭격기의 한반도 출격에 충격을 받은 것이 분명하다.

B-2에 비하여 비교적 재래식으로 평가받는 B-52는 이라크전에서 "죽음의 제왕"으로 불렸다. 토마호크 미사일 같은 스마트무기들은 TV에 방영된 것처럼 이라크의 중요시설을 정확히 공격했지만 실제 전장에 나가있는 병사들의 사기를 꺾지는 못했다. 스마트무기는 전선의 일반 병사들을 직접 겨냥한 위협이나 공포의 대상은 아니었으나 B-52 폭격기들의 대대적인 위협은 집중적이고 파멸적이었다.

따라서 이라크의 병사들이 심리적으로 느끼는 공포와 스트레스는 엄청났는데, 그 결과 이라크 병사들의 탈영병/포로 대 전사자 비율은 24.67대 1로서 탈영병 수치가 높기로 악명 높았던 베트남전의 0.19대 1을 압도적으로 능가했다.

이러한 B-52 등의 폭격기의 등장에 김정은과 군부는 정신공황상태가 연출 된 것이 분명하다. 특히 김정은의 할아버지였던 김일성이가 평양폭격 이후 무서워서 세계에서 가장 깊은 지하에 평양지하철을 건설할 만큼 미군의 폭격에 공포를 가진 것을 알고 있으리라 본다.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스위스의 유학시절에 잘못된 전쟁의 결과를 잘 배웠으리라 본다.

미군의 폭격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을 법한 김정은이가 이제 선택할 수 있는 카드는 몇가지 안되는 것 같다. 대화를 통해 한국정부에게 용서를 구하던가, 미군 폭격기에 대한 공포를 알고 있는 군부에 의해서 제거당하거나, 전쟁을 도발하여 그 책임을 지던가의 선택밖에 없는 것 같다.

이런 선택에 기로에 서 있는 김정은은 밤잠을 편히 자지 못하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김정은이가 불장난을 하면 할수록 김정은에게 주어진 시간도 이제는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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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e, 17 Nov 2015 23:16:03
<![CDATA[뉴욕타임스 기사전문 해석들입니다. 미국이 한국 같네요. 부정선거에 관심이 많군요]]> < 뉴욕타임즈 기사 전문및 번역입니다. 

기사 내용은 국내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정확합니다!.- 번역 : 유권소 해외 언론팀

 

 

SEOUL, South Korea — State prosecutors raided the headquarters of the National Intelligence Service of South Korea on Tuesday to investigate allegations that the spy agency used its agents and hired Internet bloggers to influence the presidential election last December.

검찰은 국정원이 국가정보원과 고용된 일반 시민 블로거들을 투입해서 지난 12월 대선에 개입했다는 의혹에 대한 수사와 관련하여 화요일 국정원 중앙 본부를 압수 수색했다.

 

The raid, which started on Tuesday morning and continued into the evening, was highly unusual, dealing a blow to the controversial reputation of the spy agency. Such a raid would have been unthinkable decades ago when the agency, known by the initials K.C.I.A., had served as the main tool of political control for South Korea’s military dictators.

화요일 오전에 시작되어 저녁까지 이어진 이 압수수색은 논란이 되어온 국가 정보원의 이름에 다시 한 번 타격을 가하는 것으로 아주 이례적인 일이다. 그런 압수 수색은 국정원이 중앙 정보부라는 이름으로 한국 군사 독재자의 정치적 통제의 주요 수단으로 이용되었던 수십년 전에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Even after South Korea was democratized in the early 1990s, prosecutors raided the secretive agency only once — in 2005, when it was revealed that the agency illegally ran an extensive operation of bugging the telephones of politicians, businessmen, journalists and others.

1990년대초 한국이 민주화가 된 이후에도 정치인, 사업인, 언론인 등에 대한 불법적 전화 도청이 국정원에 의해 행해진 사건이 드러났던 2005년에 검찰은 단 한 번압수 수색을 벌인 바 있다.

 

Although the intelligence agency has repeatedly vowed not to meddle in politics, allegations of wrongdoing by its agents resurfaced during the campaign for the Dec. 19 presidential election. The main opposition, the Democratic United Party, and government critics accused the agency of trying to influence online debates in favor of President Park Geun-hye, who was the governing party’s candidate at the time.

국정원은 정치 개입을 하지 않겠노라고 반복적으로 서약을 해왔지만, 지난 12월 대선 당시 국정원 요원의 범법 행위에 대한 혐의가 다시 표면 위로 드러났다.

 

Ms. Park beat her opposition rival, Moon Jae-in, by a million votes.

박 대통령은 문재인 후보를 백만표라는 근소한 차이로 이겼다.

 

Earlier this month, the police said that at least two agents from the National Intelligence Service illegally posted comments online criticizing the political opposition ahead of the election. But they said they could not determine whether the two were part of a much bigger operation by the leadership of the agency to influence the election, as the opposition party claimed.

이달 초 경찰은 최소 두 명의 국정원 요원이 대선 전 불법적으로 야당 후보를 온라인 상으로 비판하는 글을 올렸다고 발표했다. 그렇지만 이 두 명의 요원들이 야당의 주장대로 대선에 영향을 주기 위해 국정원 지도부에 의해 조직적으로 행해진 큰 작전의 일부인지는 확인할 수 없다고 경찰은 말했다.

 

A chief police investigator, who had been replaced in the middle of the investigation, later claimed in interviews with domestic media that her bosses had intervened in an attempt to whitewash the inquiry. The National Police Agency denied the accusation.

수사 중도에 교체되어 떠난 전임 수사 과장은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수사를 방해하는 상부의 압력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경찰청은 이러한 혐의를 부인했다.

 

Prosecutors have since taken over the highly sensitive investigation.

검찰이 이 대단히 민감한 사안에 대한 수사를 넘겨 받았다.

 

They themselves faced a long-running accusation from the political opposition and other critics that they shied away from offending the top political power. Because of that mistrust, the political parties have agreed to launch a separate parliamentary investigation.

검찰 역시 최고 권력자를 거스리려 하지 않는다는 야당과 그외 비평가들의 비판을 오랫 동안 받아 왔다.

 

On Tuesday, prosecutors raided the psychological intelligence bureau in the spy agency’s sprawling compound in the southern edge of Seoul.

화요일 검찰은 서울 남부 외곽 지역에 자리한 국가 정보원 심리전담반에 출동했다.

 

Their action came one day after prosecutors summoned the former intelligence service director, Won Sei-hoon, a close ally of former President Lee Myung-bak, for questioning on Monday. Two other senior intelligence officials were questioned in the past few days.

이 출동은 이명박 전대통령의 최측근이었던 원세훈 전임국정원장의 소환 조사가 있은 월요일 이후 하루만에 이루어졌다. 두 명의 다른 국정원 간부도 소환 조사를 받은 바 있다.

 

The spy agency had no comment on the raid, a spokesman said by telephone. But it had earlier denied interfering in the election. The agency said its officers’ online activities had been part of its normal psychological operations aimed at North Korea.

국정원 대변인은 압수 수색에 대해 입장을 밣히지 않겠다고 전화 통화에서 말했다. 이전까지의 입장은 대선 개입의 혐의를 전면 부정하는 것이었다. 국정원은 온라인 상의 작전은 정상적인 대북 심리전이라고 주장했었다.

 

During her election campaign, President Park and her aides had vehemently accused Mr. Moon and his opposition party of a political offensive when they first made accusations of illegal campaign activities by intelligence agents.

대선 기간 동안 박 대통령과 참모들은 문후보와 야당이 국정원의 불법적 선거 운동을 최초 비난한 것에 대해 정치적인 공략이라며 맹렬하게 비판했었다.

 

Ms. Park’s office has said it will not comment on the investigation while it is under way.

Many of the intelligence chiefs in South Korea have ended their careers in disgrace. One fled to the United States after he was estranged from his boss, then-President Park Chung-hee, Ms. Park’s father, and was last seen at a Paris nightclub in 1979. His fate has remained a mystery.

청와대측은 아직은 수사가 진행 중이므로 논평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한국의 국가 정보원 수장들은 대부분 불명예스럽게 경력을 마쳤다. 그 중 한 명은 박 대통령의 아버지인 박정희 전대통령의 신임을 잃고 미국으로 도피했다가 마지막으로 1979년 파리의 한 나이트클럽에서 목격되었다. 그의 행방은 그 후로 찾을 수 없게 되었다.

 

Later that year, a subsequent spy master assassinated Mr. Park. The man, Kim Jae-kyu, was later executed.

In more recent decades, several intelligence chiefs were imprisoned for corruption and other crimes after they left office.

같은 해인1979년 당시 정보부장이었던 김재규는 박정희를 살해하고, 후에 사형 당했다.

보다 최근의 몇몇 수장들은 퇴임 후 부패와 기타 범법 행위로 투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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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e, 17 Nov 2015 23:14:46
<![CDATA[유럽의 환경미화원들 1주일 파업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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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 16 Nov 2015 02:18:51
<![CDATA[어느 변호사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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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 14 Nov 2015 16:27:05
<![CDATA[채워지지 않는 마음]]>
 

 

물컵의 물은 조금으로 채워지고

 

주전자의 물은 1~2리터의 물로 채워지고

 

양동이의 물은 10리터의 물로 채워지고

 

목욕물은 500리터의 물로 채워지고

 

저수지의 물은 500만리터로 채워집니다

 

그러나 아무리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게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들의 욕심입니다

 

하나를 가지면 두개를 가지고 싶고

 

열을 가지면 백을 가지고 싶은게 마음입니다

 

세상 모든것은 한계가 있는데 어찌 

 

사람 욕심에는 한계가 없는지 

 

빗물이 흘러 하천을 따라 저수지에 모이고

 

저수지에 물이 가득차면 붕괴를 막기의해

 

밑으로 흘려 보냅니다

 

우리들의 욕심도 저수지의 물처럼 가득차기전에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장치가

 

있었으면하는 바람입니다

 

비는오는데 

오늘 하루도 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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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 14 Nov 2015 16:25:38